반응형 unknown royal family history29 공주와의 결혼이 몰락의 시초가 된, 후버트 드 버그(Hubert de Burgh) 마지막 4편 존 왕(King John)의 사후 헨리 3세(King Henry III of England)가 왕위에 오르면서, 후버트 드 버그(Hubert de Burgh)의 삶은 스코틀랜의 공주 스코틀랜드의 마거릿()과의 결혼을 시작으로 서서히 몰락하게 됩니다. 1221년 6월, 스코틀랜드 왕 알렉산더 2세(Alexander II)가 헨리 3세(Henry III)의 누이 조앤(Joan)과 결혼하면서, 후버트 역시 122년 10월경 스코틀랜드 왕 윌리엄 1세(King William I of Scotland)와 왕비 에르멩가르드 드 보몽(Ermengarde de Beaumont)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스코틀랜드의 마거릿(Margaret of Scotland, 스코틀랜드 왕 알렉산터 2세의 누이)과 혼인하였습니다. 마거릿.. 2025. 7. 3. 왕이 없는 전쟁에서 잉글랜드를 구한, 후버트 드 버그(Hubert de Burgh) 3편 존 왕(King John)의 사후 왕위에 오른 잉글랜드 왕 헨리 3세(Henry III) 시대에서의 후버트 드 버그(Hubert de Burgh) 이야기입니다. 후버트 드 버그(Hubert de Burgh)는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위기 당시 존 왕(King John)의 핵심 동맹이었습니다. 그는 작은 지주 출신으로, 계급 사회가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던 중세 잉글랜드에서 이례적으로 최고위직인 재무장관(Justiciar)의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재무장관은 본래 국왕 재무와 대법 업무를 관장하는 직책이었으나, 마그나 카르타에서는 후버트가 국왕 부재 시 국정을 총괄하는 자로 명시되며, 이는 단순한 행정관을 넘어 국왕 다음 가는 실질적 권력자로 인정받았습니다. 1215년 6월, 존 왕이.. 2025. 7. 2. 존 왕(King John)의 재무장관, 후버트 드 버그(Hubert de Burgh) 2편 존 왕(King John)이 왕실 봉사를 강화시키기 위해 후버트 드 버그(Hubert de Burgh)에게 그웬트의 세개의 성(Three Castles of Gwent)를 하사한 전편 내용에 이어, 후버트(Hubert)는 점차 중대한 외교 임무에도 기용되었습니다. 1200년 그는 포르투갈 왕의 딸과 존 왕의 혼인을 추진하기 위한 대사로 파견되었으나, 존이 이자벨 당굴렘(Isabelle d’Angoulême)과 결혼하면서 이 계획은 무산되었고, 1202년에 후버트는 프랑스 노르망디에 있는 팔레즈 성(Falaise Castle)의 성장(Castellan)이 되어, 존 왕의 조카이자 왕위 경쟁자였던 브타니의 아서(Arthur of Brittany)가 미르보(Mirebeau)전투에서 생포되고 난 후 아서를 감시.. 2025. 7. 1. 존 왕(King John)의 재무장관, 후버트 드 버그(Hubert de Burgh) 1편 이번엔 존 왕의 재무장관이자 이자벨라의 세번째 남편였던 휴버트 드 버그(Hubert de Burgh)의 이야기를 총 4번에 걸쳐 이야기 해 보고자 합니다. 후버트 드 버그(Hubert de Burgh)는 존 왕(King John)의 재무장관(Justiciar)으로, 고위 귀족이 아닌 젠트리(Gentry) 출신의 인물이였습니다. 후버트의 출생이나 그의 가문이 매우 불분명했는데, 1230년경 올턴 교회(Church of Oulton)에 남긴 그의 기증 문서에서 남겨진 글을 보면 "월싱엄(Walsingham)의 교회에 안치된 나의 어머니 앨리스의 영혼을 위하여"라고 적혀있고, 이를 통해 후버트의 가문이 중소 귀족이거나 젠트리 계급에 속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해집니다. ✋잠깐!한번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중세.. 2025. 6. 30. 잉글랜드와 프랑스 두 왕국을 넘나든 여왕 앙굴렘의 이자벨(Isabelle of Angouleme) 2편 전편에 이어 잉글랜드 왕 존의 아내이자 헨리 3세(Henry III)를 낳은 앙굴렘의 이자벨(Isabelle of Angouleme)에 대한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이자벨은 존 왕(King John)이 앙굴렘(Angoulême)과 라 마르슈(La Marche)의 결합하는 것으로 막으려 했던 존 왕(King John)의 게획을 위그 10세와의 결혼을 통해 처참히 깨트리고 말았습니다. 그제서야 조안(Joan)은 잉글랜드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고, 이자벨의 잉글랜드 영지를 둘러싼 다툼은 1220년까지 계속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1224년, 결국 이자벨은 위그(Hugh)와 함께 헨리 3세(Henry III)를 배신하고 프랑스 왕과 손을 잡게 되었고, 그 대가로 연금을 받고 프랑스의 포와투(Poitou) 침공을 .. 2025. 6. 27. 잉글랜드와 프랑스 두 왕국을 넘나든 여왕 앙굴렘의 이자벨(Isabelle of Angouleme) 1편 왕비로 불리지도, 왕비의 삶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채 잉글랜드 왕 존의 첫번째 아내 글로스터의 이사벨라 이야기에 이어, 잉글랜드 왕 존의 아들, 헨리 3세(Henry III)를 낳은 앙굴렘의 이자벨(Isabelle Angouleme)에 대한 이야기를 두 번에 나누어 풀어보자 합니다. 이자벨(Isabelle)은 앙굴렘 백작 오드마르(Audemar, Count of Angouleme)와 알리스 드 쿠르트네(Alice de Courtenay)의 외동딸이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몽타르지(Montargis)와 샤토르나르(Châteaurenard)의 영주 피에르 드 쿠르트네(Peter de Courtenay)의 딸이자 프랑스 왕 필리프 2세 오귀스트(Philip II Augustus)의 사촌이었습니다. 쿠르트.. 2025. 6. 26. 왕비에 오르지 못한 잉글랜드 왕 존(John)의 아내, 이사벨라(Isabella) 오늘은 왕의 혈통 브리트니의 아서(Arthur)와 브리트니의 엘리너(Eleanor)를 무참히 감금하고 살해했던 잉글랜드 왕 존(King John of England)의 왕비(사실 칭호는 붙지 못한) '글로스터의 이사벨라(Isabella of Gloucester)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사벨라는 글로스터 백작 윌리엄(William, 2nd Earl of Gloucester)과 그의 아내 호위즈(Hawise, 로버트 드 보몽(Robert de Beaumont, 2nd Earl of Leicester)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딸로, 공동 상속녀였습니다. 그녀는 이자벨 드 베르망두아(Isabel de Vermandois)의 증손녀이자, 와렌느 가문(Warenne)의 먼 친척이기도 했고, 그녀의 부계 혈통을.. 2025. 6. 25. 아서(Arthur), 왜 소년은 왕이 되지 못했는가? 플랜태저넷(Plantagenet) 왕자 브리트니의 아서(Arthur of Brittany)의 이야기는 중세 시대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그는 잉글랜드 왕 헨리 2세(Henry II of England)와 아키텐의 엘리너(Eleanor of Aquitaine)의 네 번째 아들 제프리(Geoffrey)와 브리트니의 콘스탄스(Constance of Brittany)의 유복자로 태어났으며, 태어나자마자 브리트니 공작(Duke of Brittany)이 되었습니다. 콘스탄스와 제프리는 1181년에 결혼해 딸 엘리너(Eleanor)를 1184년에 낳았습니다. 제프리는 아버지 헨리 2세와 불화 중이던 가운데, 1186년 8월, 파리(Paris)에서 열린 마상시합 토너먼트(Jousting or M.. 2025. 6. 24. 헨리 2세의 손녀, 왕좌를 빼앗긴 비운의 공주 ‘엘리너’의 진실 브리트니 공작(Duke of Brittany)이자 헨리 2세(Henry II)의 아들인 조프리 플랜타저넷(Geoffrey Plantagenet)과 그의 아내 브리트니 콘스탄스(Constance of Brittany) 사이에서 태어난 딸, 브리트니 엘리너(Eleanor of Brittany)는 약 1184년경 태어났습니다.**Brittany는 프랑스어로 브리타뉴, 영어로는 브리트니로 읽습니다. 엘리너가 태어났을 무렵, 그녀의 아버지 조프리는 헨리 2세와 사이가 멀어져 있었고, 1186년 8월 파리에서 열린 토너먼트 도중 말에 밟혀 사망했습니다. ✋잠깐!1186년 8월 파리에서 열린 토너먼트에서 조프리 플랜타저넷(Geoffrey Plantagenet)이 사망한 경기는, 당시 중세 귀족 사이에서 유행하던 기사.. 2025. 6. 23. 배신과 피로 물든 왕관의 주인공: 헨리 2세 해멀린 드 와렌(Hemalin de Warren)에 연관된 토머스 베켓(Thomas Becket), 그리고 헨리 2세(King Henry II)를 배신한 그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토머스 베켓(Thomas Becket)은 원래 헨리 2세의 절친한 친구이자 충실한 조언자였습니다. 헨리는 베켓을 1162년 캔터베리 대주교(Archbishop of Canterbury)에 임명함으로써 교회를 왕권의 통제 아래 두려 했습니다. 당시 왕과 교회는 권력의 중심지로서 서로 긴장 관계에 있었고, 헨리 2세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베켓은 대주교가 된 뒤부터 더욱 교회의 권위를 수호하는 데 앞장섰고, 왕의 명령에 반발했습니다. 특히, 헨리 2세가 1164년에 발표한.. 2025. 6. 19. 헨리 2세의 이복형제 '해멀린 드 와렌(Hamelin de Warenne)' 백작 해멀린(Hamelin)은 앙주(Anjou)의 백작 조프루아(Geoffrey)의 서자였으며, 1130년경, 조프루아가 그의 아내였던 신성 로마제국 황후 마틸다(Matilda)와 별거 중일 때 태어났습니다. 해멀린의 어머니는 앙제르(Angers)의 아델라이드(Adelaide)로 추정되나,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조프루아는 해멀린 외에도 또 다른 서녀인 엠마(Emma)를 두었으며, 엠마는 웨일스(Welsh)의 귀족 다비드 압 오웨인(Davydd ap Owain)과 결혼했습니다. 조프루아는 헨리(Henry) 1세의 딸인 마틸다의 두 번째 남편이었고, 마틸다는 훗날 헨리 2세를 낳았으니, 해멀린은 헨리 2세의 이복형제입니다. 해멀린은 왕에게 깊은 충성을 보였고, 그 대가로 부유한 상속녀와의 결혼이라는 보상을 받았.. 2025. 6. 18. 이전 1 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