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태저넷(Plantagenet) 왕자 브리트니의 아서(Arthur of Brittany)의 이야기는 중세 시대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그는 잉글랜드 왕 헨리 2세(Henry II of England)와 아키텐의 엘리너(Eleanor of Aquitaine)의 네 번째 아들 제프리(Geoffrey)와 브리트니의 콘스탄스(Constance of Brittany)의 유복자로 태어났으며, 태어나자마자 브리트니 공작(Duke of Brittany)이 되었습니다.
콘스탄스와 제프리는 1181년에 결혼해 딸 엘리너(Eleanor)를 1184년에 낳았습니다. 제프리는 아버지 헨리 2세와 불화 중이던 가운데, 1186년 8월, 파리(Paris)에서 열린 마상시합 토너먼트(Jousting or Melee Tournament)에서 말에 밟혀 사망했고, 몇 달 뒤 1187년 3월경에 아서(Arthur)가 태어났습니다.
아서가 두 살일 때 그의 삼촌 잉글랜드 왕 리처드 1세(Richard I)의 추정 상속인으로 지명되었고, 리처드는 어린 아서와 시칠리아 왕 탄크레드(Tancred of Sicily)의 딸과의 약혼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1194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6세(Emperor Henry VI)가 시칠리아를 정복하면서 이 약혼은 무산되었습니다.
아서는 프랑스와 잉글랜드 왕들 모두에게 가치 있는 정치적 인물이었습니다.
✋잠깐! 왜 아서가 프랑스와 잉글랜드 왕들 모두에게 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로 자리매김 했는지는, 1. 헨리 2세 이후 리처드 1세 왕위에 오르고 난 후 혈통 왕위 계승자는 제프리의 아들 아서였습니다. 2. 아서가 공작으로 있는 브리트니는 프랑스 내 영국 왕령의 힘을 키울 수 있는 전략적 요지였습니다. 3. 리차드 1세 이후 존이 왕이 되고 난 후 프랑스의 필리프 2세에게 있어서 아서는 존에 대항 할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 카드였습니다. 4. 아서와 그의 누나 브리트니 엘리너는 존 왕의 왕권 안정에 매우 위협적인 인물들이였습니다. |
1196년, 리처드가 아서를 자신의 궁정으로 데려오려 하자, 그의 어머니 콘스탄스는 아서를 프랑스 궁정으로 보냈고 그는 그곳에서 몇 달을 보냈습니다. 이후 브리트니로 돌아오자, 콘스탄스는 아서를 공작령의 통치에 직접 관여시키기 시작했습니다.
1199년 리처드 1세 사망 이후, 위대한 기사 윌리엄 마샬(William Marshal)과 캔터베리 대주교이자 잉글랜드 재무장관인 휴버트 월터(Hubert Walter)는 잉글랜드 귀족들을 설득하여 리처드의 막내 동생인 존(John)을 왕으로 지지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존이 잉글랜드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으며, 젊은 아서보다 경험이 많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존은 아서가 잉글랜드 왕위 계승해야 한다는 프랑스 왕 필리프 2세(Philip II Augustus)와도 그다지 친하지 않았습니다.
1199년 8월, 필리프는 존이 영국 왕이 소유한 프랑스 영토에 대해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다며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베상(Vexin)을 요구했고, 앙주(Anjou), 맹(Maine), 투렌(Touraine) 등 앙주가의 조상 영토를 아서에게 넘기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해 9월까지 존은 필리프와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가운데, 아서의 핵심 장수인 윌리엄 데 로슈(William des Roches)가 존에게 항복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유는 필리프가 존에게서 탈취한 바용(Ballon) 요새를 아서에게 넘기지 않고 파괴한 행동에 분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윌리엄 데 로슈의 이탈은 아서와 그의 어머니 콘스탄스의 전쟁 명분이 약해졌고, 르망(Le Mans)에서 존을 만나게 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존이 자신들을 체포하려 한다는 경고를 받고 한밤중에 탈출해 필리프가 있는 프랑스 궁정으로 도망쳤습니다.
이후 일시적인 휴전과 1200년 1월에는 보다 항구적인 협정 또한 이루어졌습니다. 5월 18일 르 굴레(Le Goulet)에서 존과 필리프 2세는 합의에 이르렀고, 존은 프랑스 영토에 대한 충성 맹세를 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아서는 브리트니에 대해 존에게 충성을 맹세했음에도 불구하고 존은 그의 프랑스 봉토에 대해 필리프를 군주로 인정하지 않아 그의 영지가 전부 몰수되었고, 필리프는 아서를 노르망디(Normandy)와 앙주(Anjou)의 정당한 상속인으로 인정했습니다.
이에 질세라, 존은 브리트니(Brittney), 앙주(Anjou), 푸아투(Poitou) 등의 전략적 영주 통제권 확보와 정치적 야욕을 더욱 확보하기 위해 이자벨 당굴렘(Isabelle d’Angoulême)과 결혼하였고, 그녀의 약혼자였던 위그 9세 드 뤼지냥(Hugh IX de Lusignan)이 반란을 일으켰고, 이를 존이 부당하게 다루면서 긴장은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1202년 7월, 기사 작위를 받은 아서는 필리프 왕의 어린 딸과 약혼하고, 드 뤼지냥 가문을 포함한 기사단을 이끌고 아키텐(Aquitaine)으로 진군했습니다. 아서는 아키텐 엘리너(Eleanor of Aquitaine) 여왕이 푸아티에(Poitiers)로 향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녀를 미르보(Mirebeau)에서 가로막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노년의 여왕 엘리너는 성으로 피신했고, 아들 존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존 또한 아서의 움직임을 포착해 르망에 주둔 중에 있었고, 어머니의 전갈을 받고 소규모 기병대와 함께 빠르게 이동해 1일 이내에 100마일을 돌파, 8월 1일 아침 아서의 군대를 기습했습니다. 짧은 전투 끝에 모든 지휘관들이 생포되었고, 아서는 윌리엄 드 브로즈(William de Braose)에 의해 체포되어 팔레즈(Falaise)에 감금되었습니다.
그의 포로 생활은 왕의 혈통에도 불구하고 비인간적이고 굴욕적인 방식으로 다루어, 매우 불쾌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팔레즈에 갇혀 있는 동안 존은 아서를 장님으로 만들고 거세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세 명의 사절 중 두 명은 임무 수행을 거부하고 달아났고, 한 명만이 팔레즈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감옥 관리자 휴버트 드 버그(Hubert de Burgh)는 당시 15세였던 아서에게 그러한 짓을 할 수 없다며 명령을 거부했고, 존은 잠시 그 결정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존은 오히려 아서가 이미 그렇게 되었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이는 브리트니 지역의 반란을 진정시키려 했던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나 아서가 살아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반란은 더 격화되었고, 그 후 아서는 루앙(Rouen)으로 이송 후 1203년 부활절 무렵, 아서는 루앙에서 16살 나이에 살해되었습니다.
글래모건(Glamorgan)의 시토 수도원(Cistercian Abbey)연대기에는 아서의 죽음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 왕은 시농(Chinon)을 점령했고, 그 후 노르망디와 앙주, 푸아티에 시까지 모든 도시와 요새를 마음대로 차지했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존 왕이 아서를 포로로 잡은 후 잠시 살려두었지만, 결국 부활절 전 목요일 저녁, 만취 상태에서 마귀에 사로잡힌 듯한 그가 루앙의 대탑에서 아서를 자신의 손으로 살해하고, 시체에 큰 돌을 묶어 센 강에 던졌다. 한 어부가 그 시체를 그물에 걸려 발견했고, 시신을 알아본 이들은 존의 보복을 두려워해 몰래 베크(Bec)의 성모 마리아 수도원에 묻었다."
아서가 죽자 브리트니 공작위는 그의 누나 브리트니의 엘리너(Eleanor of Brittany)에게 돌아갔어야 했지만, 그녀 역시 존 왕에게 포로로 잡혀 영국에서 감금되었기 때문에, 그 지위는 그의 두 살배기 이복 여동생 투아르 알릭스(Alix of Thouars)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녀는 콘스탄스가 세 번째 남편 투아르 기(Guy of Thouars)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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