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5년 헨리 1세(Henry I)가 서거한 뒤, 그의 조카 스티븐 블루아(Stephen of Blois)와 딸 엠프레스 마틸다(Empress Matilda) 사이에 왕위 계승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졌습니다. 헨리 1세가 마틸다를 후계자로 지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즉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귀족들의 반발이 거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티븐은 형이자 윈체스터 주교(Bishop of Winchester)인 앙리 블루아(Henry of Blois)의 지원을 등에 업고 계승 경쟁에 뛰어들었으며, 잉글랜드(England) 교회와 궁정 유력 인사들의 지지를 확보해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정통 후계자라고 믿은 마틸다는 이에 굴하지 않고 스티븐과의 전쟁을 끊임없이 이어갔습니다
1097년, 스티븐(Stephen of Blois)은 노르망디 남부 지역에 있는 블루아(Blois)에서 태어났고, 그의 어머니는 잉글랜드 왕 윌리엄 2세(William II of England)의 딸인 아델라(Adela)였습니다. 그의 아버지, 블루아 스티븐-앙리 백작(Count Stephen-Henry of Blois)은 십자군 전쟁 중 전사하였고, 어린 스티븐은 어머니의 손에서 성장해왔습니다. 스티븐의 미래를 위해 아델라는 스티븐을 헨리 1세(Henry I)의 궁정에 들여 보내기 위해 영국으로 보냈고, 이후 그는 호감 가는 외모에 성격까지 좋은 사람으로 여겨졌고 특히 탕슈브레 전투(Battle of Tinchebray)에서 활약하며 헨리 1세(Henry I)의 노르망디 지배를 확립하는데 기여하여 헨리 1세로부터 기사(Knight) 작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스티븐은 마틸다 불로뉴(Matilda of Boulonge)와 결혼하며 많은 영지를 상속받고 불로뉴 백작(Count of Boulonge)까지 작위를 받게 되었고, 두 부부는 당대 가장 부유한 귀족 중 하나였으며, 권력을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한편, 1120년, 영국 해협에서 화이트 쉽(White Ship)이 침몰하여 헨리 1세(Henry I)의 왕위 계승자였던 장남 윌리엄 아델린(William Adelin)이 사망하는 비극이 닥쳤고, 헨리 1세는 아들 대신 본인을 대신할 후계자를 딸 마틸다(Empress Matilda)가 받을 것이라고 주요 영주들과 주교들에게 공표했습니다.
이후 헨리 1세(Henry I)는 스티븐을 포함한 모든 궁정 신하들에게 마틸다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했고, 그녀를 조프루아 앙주(Geoffrey of Anjou)와 결혼시키도록 주선했습니다. 하지만, 궁정 사람들은 마틸다를 후계자로 삼은 것에 대해 호의적으로 보지 않고 불만을 제기했는데, 여성을 왕으로 세우는 것과 남편 조프루아(Geoffrey)가 노르망디의 적대국이었던 앙주(Anjou) 가문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실제 궁정 및 귀족들의 불만은 1135년 12월 헨리 1세가 서거 후 논란이 더욱 거세 졌으며, 이 때 스티븐(Stephen)은 귀족과 궁정, 그리고 교회 지지를 얻어 엠퍼러스 마틸다(Empress Matilda)를 제치고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왕위 오르고 난 후 스티븐은 자신의 통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행정 및 정치적 조치를 취했지만, 마틸자의 왕위 계승 주장, 귀족들의 충성 불안정, 앙주 같은 해외 세력의 개입, 교회의 정치적 압박 등 새 정권에 대한 위협이 점차 커지고 있었습니다. 스티븐이 군주로 재위하는 동안 사회 불안과 정치적 분열이 심화되고 법과 질서가 무너지는 혼란이 이어졌으며, 이로 인해 당시 상황은 ‘무정부 상태(The Anarchy)’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특히, 스티븐의 통치는 이전 헨리 1세(Henry I)와 달리 확고한 리더십과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의 우유부단함과 불분명한 정책은 귀족들에게 약점으로 비치게 되었고, 귀족들은 이를 기회 삼아 사익을 추구하며 스티븐 재위 기간 동안 정치적 혼란과 무질서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게다가, 도적 귀족(Robber Barons)들이 왕의 허가 없이 성을 건설하고 자신들의 영지를 철권 통치하기도 했습니다.
잉글랜드 왕 스티븐(King Stephen of England)은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기 보단 새로운 백작들을 임명하면서 기존 귀족들의 반감을 사며 왕권이 점점 약해지는 가운데, 헨리 1세(Henry I)의 딸 엠퍼러스 마틸다(Empress Matilda)의 왕위 계승 도전은 여전히 계속되었고, 잉글랜드와 노르망디에서는 그의 통치 초기부터 말년까지 끊임없는 내전이 이어졌습니다.
1138년 중반, 스티븐은 마틸다의 삼촌인 스코틀랜드 왕 데이비드 1세(David I of Scotland)와 할리드 전투(Battlel of the Standard)를 치뤘고, 성공적으로 격퇴하며 초기 내전 국면에서 중요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1138년 후반, 엠퍼러스 마틸다(Empress Matilda)의 서자이자 이복형제인 로버트 글로스터(Robert of Gloucester)도 스티븐에 대항하여 반기를 들었고, 이듬해인 1139년, 로버트와 마틸다의 삼촌 스코틀랜드의 데이비드 1세(David I of Scotland)는 마틸다의 군대와 함께 잉글랜드를 침공하였고, 마틸다의 남편 조프루아 앙주(Geoffrey of Anjou)는 노르망디(Normandy)에서 군사 활동에 집중하였다. 이 마틸다 중심의 반란 세력은 잉글랜드 남서부를 장악하였고, 스티븐은 남동부의 지배권을 유지하였습니다.
1141년 2월 벌어진 링컨 전투(Battle of Lincoln)에서 스티븐은 결정적인 패배를 겪으며 정치적·군사적으로 가장 취약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실제 링컨 전투를 앞두고 스티븐은 먼저 링컨 성(Lincoln Castle)을 확보했지만, 곧 로버트가 이끄는 앙주 군대(Angevin Army)와 포위스 영주 마도그 압 마레두드(Lord of Powys, Madog ap Maredudd), 카드왈라드 압 그루피드(Cadwaladr ap Gruffydd)가 이끄는 웨일스 군대(Wales Army)의 지원을 받은 로버트의 앙주 기사단(Angevin Knights)은 스티븐의 귀족 연합군들을 향해 돌격을 개시했으나 일부 웨일스 부대는 랜울프 백작(Earl Ranulf)에게 격파되기도 했습니다.
웨일스(Wales) 부대를 격파한 직후에도 스티븐(Stephen) 측 백작들은 여전히 병력 면에서 열세였으며, 마틸다(Matilda) 측이 준비한 계략과 포위망 속에 점차 고립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양쪽 진영은 링컨 시가(Lincoln) 인근과 도심 거리에서 치열하게 맞붙었으며, 창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격렬한 근접전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링컨 시내(Lincoln City) 좁은 골목과 광장에서 벌어진 전투는 양측 모두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겼으며, 피로 물든 거리는 당시 전투의 참혹함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전투가 길어지면서 스티븐의 병력은 결국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전열이 무너졌습니다. 그는 왕의 위엄을 지키려 끝까지 무기를 들고 싸웠으나, 중무장한 기병들에게 포위되어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패배한 스티븐은 즉시 포로로 신병이 확보되었고, 마틸다의 지휘관들은 그를 브리스톨(Bristol)로 이송하여 철저히 감시되는 요새 감옥에 투옥했습니다.
이 사건은 1141년의 권력 구도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가져왔으며, ‘무정부시대(The Anarchy)’라 불린 내전의 향방을 일시적으로 마틸다 쪽으로 기울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스티븐이 투옥되면서 마틸다는 왕위에 오를 기회를 틈탔으나, 런던 시민들의 격렬한 반대 시위가 일어나 여왕 대관식은 이뤄지지 못했고, 대신 '영국의 여인(Lady of the English)'이라는 칭호만 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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