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덴마크 바이킹에게 빼앗긴 잉글랜드의 흑역사의 주인공, 바이킹 크누트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크누트(Cnut)는 덴마크 왕 스베인 포크비어드(Sweyn Forkbeard)의 아들로, 아버지와 함께 1013년 잉글랜드를 침공하여 일시적으로 런던을 함락하고 애설레드 2세(Aethelred II)를 노르망디로 몰아낸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베인이 이듬해 사망하자, 잉글랜드 귀족들은 애설레드를 복위시켰고, 크누트는 덴마크로 철수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곧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다시 침공을 감행하며, 잉글랜드 왕위 탈환을 본격적으로 시도합니다.
1016년, 애설레드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에드먼드 아이론사이드(Edmund Ironside)가 즉위하면서 크누트와의 전면전이 벌어졌습니다. 양측은 여러 차례 전투를 벌였고, 특히 애샌던 전투(Battle of Assandun)에서 크누트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전쟁의 끝에서 두 사람은 잉글랜드를 남북으로 나누어 통치하기로 합의했으나, 같은 해 말 에드먼드가 병사하면서 크누트는 잉글랜드 전역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앵글로색슨 귀족과 제도를 포용하는 동시에,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하며 왕권을 공고히 하였습니다.
크누트는 이후 덴마크 왕위도 계승하여 잉글랜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남부를 아우르는 북해 제국(North Sea Empire)을 형성합니다.
그는 잉글랜드 내부에서는 교회와 귀족을 적절히 활용하여 정통성을 확보했고, 법과 질서를 존중하며 앵글로색슨 왕권의 연속성을 이어가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1035년 크누트가 사망하자, 제국은 아들 해럴드 1세(Harold I)와 하르다크누트(Harthacnut) 사이의 분열과 내전으로 빠르게 해체되었습니다. 하르다크누트가 1042년 사망하면서 크누트 왕조는 단명으로 끝났고, 귀족들은 다시 앵글로색슨 왕족인 에드워드 더 콘페서(Edward the Confessor)을 왕으로 추대하게 됩니다.
에드워드는 1066년 자식 없이 사망하였고, 잉글랜드는 다시 왕위 계승 문제로 혼란에 빠졌습니다. 대부분의 귀족은 해럴드 고드윈슨(Harold Godwinson)을 지지했지만, 프랑스 노르망디의 공작 윌리엄(William, Duke of Normandy) 역시 에드워드로부터 왕위 약속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침공을 결심합니다. 같은 해 9월, 노르웨이 왕 해럴드 하드라다(Harald Hardrada)의 침공을 막은 해럴드는 곧 이어 남하한 윌리엄의 군대와 헤이스팅스(Hastings)에서 격돌하게 되었고, 결국 전사하고 맙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윌리엄은 런던으로 진군하여 왕으로 선포되었습니다.
1066년 윌리엄 1세(William I)는 잉글랜드 왕위에 오르며 노르만 왕조(Norman dynasty)를 개창하게 됩니다.
그는 대규모로 노르만 귀족을 이주시키고, 기존 앵글로색슨 귀족들을 축출하거나 재편하며 통치 기반을 새롭게 세웠습니다. 윌리엄은 봉건제를 체계적으로 도입하고, 도메스데이 북(Domesday Book) 편찬과 같은 행정 개혁을 단행하며 왕권을 강화하였습니다. 그가 이룩한 통일은 단순한 영토의 통합이 아니라, 문화, 언어, 법률, 귀족 구조 전반에 걸친 총체적인 변화와 중앙 집권의 완성이었다는 점에서 크누트의 통일과 구별되고 합니다. 이로써 잉글랜드는 중세 유럽의 새로운 권력 체계 속으로 편입되게 새로운 노르만왕조의 시대를 열게 됩니다.
다음편에 이어 윌리엄 1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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